너를 위한 선물

오늘의 향기 - “가장자리(brink)로의 초대”

작성자
명기 이
작성일
2020-07-25 09:35
조회
127

이미지: pixabay.com

안녕하십니까? 토요일의 평화를 빕니다!

살면서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단어가 있습니다. 변경, 가장자리, 절벽, 고비 등등.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최근 몇 년간 이 단어들로의 초대가 엄청나게 저에게 옵니다.
수도생활 가운데서 이 단어들을 많이 접했음에도 저는 두려움 때문에 아마도
귓전으로 넘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이 단어들이 좋아졌습니다. 새로운 정상 뉴 노말은 저의 인생에서도
동일하게 시작이 되었고, 이걸 받아들여가니 이 단어들이 제 옷으로
입혀지려 합니다. 아직 머릿속 생각이지만 훈련한다는 건 흥분을 일으킵니다.

커트 보니것이라는 문학가의 책, “자동 피아노”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가장자리에서는 한복판에서 보지 못한 걸 볼 수 있다.”

인생의 한 때에는 꾸준히 중심에서 보려고 까치발을 섰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그것만 보는 경우가 더 많았는데,
종종 알 수 없는 고통이 올 때마다 잠깐 잠깐 가장자리에서
바라보는 기막힌 체험이 있었다는 걸 기억할 수 있습니다.

마치 성경의 욥이 탄식과 철학적 질문과 크레이지(crazy) 발광을
다 했어도, 하느님께서는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지독하게도
그를 가장자리로 내리셔서
거기서 주님 창조의 광활한 세계를 펼쳐보여주셨던 것처럼.
그래서 욥은 한번도 전체를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의 편협한 시야에
관해서는 주님께 용서를 청하게 된 그런 경험 말입니다.

오늘 복음말씀(마태 20,20-28)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지대한 관심(높은 자리)에 반하여 욥의 하느님처럼
가장자리로 초대해주십니다.

물론 예수님은 “너희가 죽음을 견디어낼 수 있겠느냐?” 하시며
겁주지 않으십니다.
제자들에게는 과정이 필요하니까요.
도리어 “나와 함께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겠느냐?” 하고
초대를 하십니다. 그것은 자유로운 선택을 묻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이 초대가 있은 뒤 한참 후에, 오늘 기념하는 야고보 사도는
영성으로 불타올라 세상의 관심사를 뒤로 하고
가장자리 즉 덕행의 정상에 도달하여 치명을 당하게 됩니다.
그의 목숨은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주님과 함께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셨으므로 영원히 사는 삶으로 나아갑니다.

제인 오스틴은 “어디선가 꺾여왔지만 가만히 얌전히 화병에 꽂혀있는 정물화
스틸 라이프(still life)가 무척 영적이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러면서 “거기에는 예수님이라는 영원한 생명의 빛이 스며 있다”는
영감을 받습니다.

우리의 목숨은 필멸의 삶을 살지만 그 안에 영원한 빛이 스며들어서
생명이 지속되는 still life를 알아듣기 위하여
저는 가장자리로의 초대에 한 걸음 더 들어가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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