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심회원이 되려면

초대의 글

새 자매들이 우리와 함께 수도생활을 하고자 입회할 때,

우리는 살아있는 전통이 지닌 풍요함을

그들과 함께 나눈다.

이리하여 교회 안에서 우리의 사명을 살아가는 기쁨이

다시금 새로워지고 또 강화된다.

(성심수녀회 회원 75)

성소문의:  이미순 마리아 수녀

핸드폰 : 010-4786-5501

이메일 : lmsrscj@hanmail.net

성심수녀회의 입회조건은 ..

  • 성심회의 정신과 사명에 대한 매력을 갖고 있는 여성
  • 관대함과 무엇이든 준비되어 있는 마음 자세를 소유한 여성
  • 연령에 맞는 건전한 판단력, 성찰할 수 있는 능력, 결단력과 책임감을 소유한 여성
  • 공동체 생활을 하기 위하여 대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여성
  • 사도적 생활에 필요한 신체적 건강 및 심리적 건강한 여성
  • 세례 받은 지 3년 이상, 고졸이상의 학력을 소유한 미혼 여성(20세 이상)

개인면담

성소식별을 위해 성소담당 수녀와 정기적인 개인면담을 하게 됩니다.

성소자를 위한 기도

하느님,

당신의 힘은 사랑이며, 그 마음은 무한히 크십니다.

당신께서는 성심수녀회 수녀들을 부르시어

당신의 현존에 민감하게 깨어있고

당신 백성의 고뇌와 희망에 귀 기울이며

창에 찔리신 그리스도의 마음의 여인들로 삶으로써

당신의 사랑을 발견하고 드러내도록 하셨습니다.

저희를 향한 당신의 갈망에 늘 충실할 수 있도록 저희를 지켜주소서.

정신과 사명에 있어 관상적이며

다문화 세계에서 친교를 열렬히 바라고

관대하게 용서하고 화해하며

정의와 평화, 생태계 보전에 열정을 지니도록 해 주십시오.

저희의 증거로,

다른 여성들을 같은 정신과 사명으로 이끌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인격적인 사랑을 지니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당신의 얼굴을 드러내도록 준비된 여성들이

저희에게 동참하게 해 주십시오.

이 시대의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당신 안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자매들의 사랑에 의지하며 살아갈 동료들을 보내주십시오.

마들렌 소피이처럼 관대하고 기쁨에 넘치며

필리핀처럼 용기 있고 담대한 여성들을

성심수녀회로 초대해 주시고,

모든 성심회 수녀들이 이런 마음 자세로 새로워지게 하소서.

부활하시어 이제와 영원히 당신과 또한 성령과 함께 다스리시는

성자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는 신뢰와 희망으로 이 청원기도를 드리나이다.

아멘

Kathleen Hughes RSCJ (미국-캐나다 관구)

성소이야기

이지현 로사 수녀님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뜬금없는 질문이지요? 그 어느 날, 저에게도 어색한 질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행복해지고 싶어 하긴 하지만 지금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그 하나의 목표를 위해 달렸습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어서는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많이 벌까? 어떻게 하면 더 유명해질까?’에 혈안이 되어 쉬는 것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관심 없이 그리고 하느님은 내 성공을 위한  협력자라고만 생각하며 그저 달리기만 했습니다.

어느 날 그저 달리기만 하는 저를 안타깝게 본 한 친구의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이 저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저 성공만 한다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던 제게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은 절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생각하게끔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였죠. 어느 학교를 졸업한, 어디에서 일하고 있는, 얼마를 버는, 어떤 자격증을 가진 누구누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알고 있는가? 이 또한 저에겐 혼란스러운 질문이었습니다.

돈, 명예,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 안에서 나 자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볼 여유는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건강을 잃었고 그와 함께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나를 꾸미고 있던 모든 것들을 잃고서 정말 있는 그대로의 제 자신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하여 도저히 쳐다볼 수도 없는 제 자신을 살리시는 하느님을 체험했습니다. 나 자신 조차도 받아들이기 힘든 나를 끌어안아주시는 하느님을 경험했습니다. 근육이 다 굳고 온 몸이 염증으로 뒤덮인 이상한 병에 걸려 걷지도 못하고 그저 누워서 숨만 쉬고 있었을 때 저는 제가 알지 못하는 저의 모습을 만났습니다. 저의 거짓상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죠.
모든 것을 잃었다는 분노에 주변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짜증을 내는 것은 기본이었고, 제가 평생을 이뤄온 학벌과 경력,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명예와 더 달려야 할 목표 등이 저를 나타내는 전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모두 잃은 상황에서 느껴지는 열등감과 실패감은 삶을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부르기도 했습니다.
울고, 화내고, 성질을 부리는 매일 매일을 지냈지만 그런 저의 모습에 지치지 않고 찾아와 말동무를 해주고 휠체어를 밀어 산책을 시키고, 화장실에 데려가는 친구들과 가족의 모습에 조금씩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끓어오르는 분노로 살려달라는 기도조차 할 수 없었던 제 옆에서 끊임없이 기도하시는 어머니와 괜찮다고 말해주며 진심으로 그리고 온 몸으로 저와 함께 했던 친구들 안에서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것없어서 나 자신 조차도 포기해버린 이지현을 끌어안아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이제 정말 아무것도 없는 알몸으로 숨어있는 저에게 “너 어디 있느냐?”하고 찾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내가 나를 포기할 지라도 끝까지 붙잡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벌레 같고 쓰레기 같다고 느끼는 제 자신을 소중히 다뤄주시는 하느님을 만났습니다. 이 경험을 하고서는… 예전처럼 살 수 없었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인생에서는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도 성소라는 것은 기도 중에 소리가 들리거나, 어느 날 뭐가 보이거나, 정말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사람들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일미사만 겨우 나가고, 하느님을 나의 성공의 조력자라고 생각하던 제가 수도원에 입회하게 된 여정을 보면 성소라는 것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마음이 움직이고 그리고 어느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도성소가 있는 것처럼 결혼성소가 있고 또 다른 일들에도 성소가 있는 것 처럼요…

만약 병을 통해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꼬리표를 뗀 제자신이 진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면 예전의 생활과 인생 목표를 쉽게 내려놓진 못했을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죽을 수도 있다는 극한의 상황, 만약 병이 호전 되더라도 이때까지 평생을 하나만 보고 달려왔던 피아노를 다시는 칠 수 없을 것이란 선고,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서 침대에 누워 숨만 쉬고 있었던 일주일 동안의 경험이 저를 모든 것에서부터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저처럼 엄청나게 모든 것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극단적인 사건은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브레이크의 시간은 찾아온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이런 큰 일이 있기 전에 전조가 되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분명한 징조가 있었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나요? 잠시 의문을 가졌다가 다시 현재의 레일로 돌아가 미친 듯이 뛰기 마련입니다. 잠시나마 든 의문은 불편함을 가져오고 그 불편함은 자꾸 나를 돌아보고 원천을 찾게 만듭니다. 그것은 고통을 부르지요. 하지만 우리 중에 고통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잠시 멈췄던 걸음을 재촉하여 자신이 뛰던 레일 위로 올라갑니다. 쳇바퀴가 힘들지만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결국 예전의 생활과 인생의 목표를 아주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단지 나에게 브레이크의 시간이 왔을 때, 뭔가 불편한 그 질문이 다가왔을 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 있게 거기에 응답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그리고 고통스럽고 불안하더라도, 시간낭비처럼 느껴지더라도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저는 아는 지인을 통해 성심회 수녀님을 알게 되었고 성소모임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다른 수녀회 두 곳을 방문해 보긴 했지만 아직 병색이 완연한 (그땐 제가 머리도 다 나질 않고 몸도 엉망인 상황이었습니다.) 제 모습을 반겨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저에게 성심회는 또 한 번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주는 곳이었습니다. 아직 몸과 마음에 큰 상처가 남아 있는 저를 있는 그대로 봐주셨고 있는 그대로 끌어안아 입회를 허락해주셨습니다. 저는 성심회에서 지원기를 성소모임을 통해 지내고 청원기 1년, 수련기 2년을 지낸 뒤 2013년 8월, 첫서원을 했습니다.

저희는 청원기와 수련기 때 성심회의 사도직을 돌면서 실습을 하게 됩니다. 수련기 2년차에는 부천에 있는 모퉁이 쉼터라는 가출청소년들을 위한 쉼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한 번도 상상해 본 적 없었던 일들과 아이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모습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 때 쉼터에서 실습을 하면서 한 가출청소년을 만났는데, 14살이었던 그 친구는 저에게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질문했습니다.“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죠?”저는 순간 대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마음속에서 1초의 망설임 없이“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거든요. 답을 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제게 그 아이는 당당히 말했습니다.“수녀님은 수녀님이니까 사랑이라고 대답하시겠죠?” 어쩌면 진부할 수 있는 저 말이 저에겐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제 맘속에선 또 1초의 망설임 없이 “아니…”라는 대답이 흘러나왔거든요. 그 실습 이후 저에겐 큰 질문이 두 개 생겼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 그리고 난 정말 그것을 사랑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수녀원에 들어오면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사실 전 그것이 가장 두려웠습니다. 모르는 사람들과 한 집에서.. 괜찮을까? 이제 5년째 공동체 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큰 힘을 받습니다. 수녀님들의 작은 배려와 하느님을 향한 마음과 사랑으로 단합하여 뭔가를 해내는 여러 가지 일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또 다른 방식으로 체험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이 저도 모르는 사이 저에게는 삶의 큰 원동력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동체 식구들에게서,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마중물 삼아 제 안의 사랑의 우물을 가득 채우고 지금은 성심여자고등학교에서 교목실 수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쉼터의 14살 아이의 질문에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했던 제가 여러 자리에서 청소년들의 삶의 여정에 동반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다른 마음자리의 저를 만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네 돈도 맞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제가 버리고 싶었던 기억들과 아픔들, 모퉁이의 버려진 돌처럼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디딤돌이 되어 아이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맞닿는 곳에서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이 나옵니다.
제가 수녀라서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안에서 사랑에 대한 진리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예전과 달라진 상황은 없습니다. 저는 아직 병이 있습니다. 조금만 무리해도 관절이 아프지요, 예전에 할 줄 모르던 것은 여전히 잘 모릅니다. 급한 성격과 다혈질의 성향으로 종종 일을 그르치는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완벽주의 성향이라서 새로운 것을 할 때나 계획에 없는 일을 할 때 힘들어 하며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죠. 하지만 크게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저를 휩싸고 있던 기본 감정인 불안함과 우울함이 없어진 것입니다. 수련기 활동을 거치면서 이것이 하느님에 대한 확신에서 오는 안정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알아듣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무서운 훈육과 철저한 규칙과 통제 그리고 절제 생활을 통해 제가 뭔가를 알아들은 것일까요? 아닙니다. 저를 변하게 한 것은 그저 진심이 담긴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어느 학교를 나오고 무언가를 특별하게 잘 하고 뛰어난 어떤 것이 있어서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이지현”이기에 받은 사랑, 사랑받는 존재라는 확신과 믿음이 지금의 불안하지 않은 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입회 전의 하느님 체험과 초기 양성 기간의 사랑 체험이 저에겐 평생을 통해 간직하고 돌아가야 할 그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 강렬한 체험이 얼마나 소중한지요? 모든 사람에게 정답으로 다가갈 수는 없겠지만 강렬한 체험의 한 부분이 되길 청하며, 오늘도 하느님 사랑 안에서 열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작성 : 2014년 8월 18일

주님 나를 부르셨으니 -나의 영웅심을 부추기신 하느님 

김숙희 그라시아 수녀

 

4대 종교가 공존하는 우리집안
내가 몸담고 있는 수도 공동체 수녀님들 가정이 대부분 구교 신자 가정인 것과 달리 나는 한 집안에 4대 종교가 공존하는 배경에서 자라났다. 불자이신 부모님, 천도교 신자이셨던 할머니, 개신교 신자인 동생과 함께 집안에서 나는 가족 중 유일한 가톨릭 신자이다. 이런 배경을 가진 내가 어떻게 수도 생활로 부르심을 받아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강한 팔로 나를 오늘,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그분’에 대해 경외심이 절로 생긴다.
나는 1981년 9월 성심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입회하여 “나의 성소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하고 되돌아보면, 하느님께서는 나의 삶에서 일어난 사건 하나하나와 가족들, 그리고 내 성격과 마음 속 깊은 곳의 갈망을 통하여 이 길로 나를 부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의 부모님 고향은 경남 남해도이다. 집안에 아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집안에, 딸만 일곱을 둔 부모 사이에서 나는 둘째 딸로 태어났다. 독자이며 종손인 아버지에게서 아들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리시던 할머니 할아버지께, 나의 부모님은 아이가 태어나도 그 소식을 기쁘고 당당하게 전하지 못하고 ‘이번에도 딸입니다’라는 송구스러운 말씀으로 대신해야 했다. 그 당시 한국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총명하고 능력이 많으셨던 나의 어머니도 마치 죄인처럼 새로 태어난 아이를 안고 매번 눈물을 흘리셨다. 거의 일생을 임신하고 출산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사신 어머니를 보며 나는 어려서부터 결혼은 안 할 것이며 대신 독신으로 낙도에 가서 가르치거나, 인류에 봉사하는 삶을 살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의 어려움과 불합리함을 잘 아시는 어머니께서는 우리가 무엇이든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청을 할 때마다 “그래, 해 보렴” 하시며 파격적인 일들을 허락해 주셨고 수도 생활까지도 허락해 주셨다.

하느님과 친하게 만든 담임선생님
짓궂으신 하느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패턴은 나의 영웅심을 살짝 부추기는 것이었다. 나는 천주교 고등학교인 계성여고로 배정을 받았는데 뜻밖에도 담임선생님께서는 영어를 가르치는 수녀님이셨다. 반장을 뽑는 날, 내 눈에 멋지게 보이는 담임선생님 (샬트르 바오로회의 박정자 레미지오 수녀님)께서는 그냥 관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하지 않고, “여러분 중에 누가 반장으로 봉사를 해주겠어요? 누가 하라고 해서 하거나 하지 말라고 해서 못하면 자유가 없지요”라고 하시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자유! 이 말이 나의 영웅심을 건드렸다. 우리 중에 적어도 하나는 자유로운(?) 사람이 나와서 우리 반의 체면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얼른 손을 들었고, 반장이 되었다. 이런 패턴은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여러 번 반복되었다. 나는 수녀님을 몹시 사랑하게 되었고, 잘 모르지만 하느님과도 친하고 싶었다. 그해 학교에서 교리를 받고 영세를 했는데 담임선생님인 수녀님은 그라씨아 (은총)라는 예쁜 세례명을 선물로 주셨고, 멋진 대모님도 소개해 주셨다. 대모님은 대학교를 마치자마자 성심 수녀회로 입회를 하셨다. 대모 대녀라는 인연 때문에 나도 성심회 수녀가 된 것이다. 아직 영세도 안 했을 때인데도, 인생에 관해 너무 여러 가지 질문을 하는 둘째 딸에 대해 뭔가 걱정이 되셨는지 어머니는 수녀님께 자주 상담을 하셨다고 한다. “숙희가 저러다가 수녀님이 되면 어떻게 하지요?”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여고생들이 사춘기 감정으로 한때 그런 생각들을 한답니다.” 그 말을 믿고 안심하신 어머니는 나중에 그 이야기를 하며 웃었다. 영세를 받은 후, “칠층산”, “기도의 체험” “러시아에서 그분을” 등등 담임선생님께 소개 받은 많은 영성 서적을 열심히 탐독하였고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영적인 삶에 대한 갈망과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고 싶은 열망이 나를 가득 채웠다.

내 삶을 바꾼 막내 동생의 출생
고 3 때였다. 한 해 선배인 언니가 미아리에 있는 스승 예수 제자 수녀회로 입회를 했다. 나는 새벽반 학원을 다니던 중이었는데, 수요일과 일요일에는 학원에 가는 대신 미아리 수녀원으로 가서 아침 기도를 같이 바쳤다. 노래로 하는 수녀님들의 아침 기도는 천상의 소리 같았고, 고 3의 절박한 심정과 섞여서 “하느님, 대학에만 붙게 해 주신다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겠나이다.” 라고 하느님과 은밀한 거래를 하였다. 한때는 그곳 수녀원으로 부르시는가 생각하여서 반 봉쇄 수녀회인 그 수녀원 안에서 발목까지 오는 수도복을 입고 일생 하느님의 시선에 나를 숨기고 기도와 찬미의 삶을 사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대학에 들어가 넓은 세상(?) 맛을 보니 그곳은 도저히 나의 왈가닥 성격과는 맞지 않을 것 같아 그 수녀회로 입회하려던 생각을 슬그머니 철회하게 되었다. 남녀공학에 들어가 남학생 친구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고 가까운 감정도 느끼는 가운데 하느님과의 약속은 점차 내 머릿속에서 잊히고 있었다. 내가 학창 시절을 보낸 때는 유신 독재 말기라 나는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독재에 저항하는 시위에 꽤 주도적으로 참가하였고, 시대와 세상을 비판하며 절망으로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내 삶을 바꾼 사건이 일어났다. 어머니께서 아들 손자를 바라는 시부모님의 뜻에 거역하지 못하여 마흔 다섯의 나이로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하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늦은 나이에 임신을 감행하신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실망이, 그리고 개인을 희생하게 만드는 세상의 관습에 대한 저항과 절망으로 나는 몹시 우울했고 자주 울고 다녔다. 세상에 대한 미움과 화는 폭발 직전의 화산과 같았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막상 동생이 태어나자 식구들 모두가 그만 홀딱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다. 십년 만에 새로 본 동생은 우리와 손가락도 닮았고 발가락도 닮았고, 코도 눈도 다 닮았다. 어찌나 예쁘고 신기한지 나의 딱딱한 마음을 일순간에 바꿔 놓으신 하느님께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찬미가 흘러 나왔다. 세상이 아무리 불합리해도 하느님께서는 곡선으로도 직선을 그릴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고 이렇게 하느님께 승복하는 체험은 다시금 나의 삶을 봉헌하고 싶다는 갈망을 불러 일으켰다. 그 뒤의 신앙생활은 참으로 큰 기쁨을 주었고, 피정 때마다 하느님의 현존 체험을 강하게 하였고 그분과 한평생을 함께 하는 삶에 대한 열망을 더 깊이 갖도록 하였다.

입회와 어머니의 편지
대학교 4 학년 때였다. 아무래도 딸이 수상한지 어느 날 어머니는 졸업하고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고 물으셨다. 나는 솔직하게 수도자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씀드렸는데, 걱정했던 일이 현실이 되나 보다 생각하셨는지 한숨을 쉬시며 어머니는 나도 알고 있고 어머니도 아시는 성암 스님이라는, 근처 절의 학생 지도 법사를 찾아뵙고 의견을 들어 보자고 제안하셨다. 미리 잘 말씀해 달라고 전화까지 했는데, 스님께서는 어머니와 나를 놓고, “수도 생활을 적어도 20년 이상 해 본 사람을 스무 명 넘게 만나서 수도 생활에 대해 들어 보고 결정을 해라.” 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스님의 대답에 다소 실망을 하였지만, 그만큼 진지하게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시려니 하고 적당히 해석을 하고는, 실상은 한 사람에게도 물어보지 않고 수녀원에 입회를 하였다. 입회 후 한 달이 지난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다음과 같은 편지를 내게 보내오셨는데, 지금도 그 편지를 가끔 읽어보며 분발심을 가진다.
“ (중략)……. 비록 가는 길은 서로 다르지만 한 종교인으로 완숙된 네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니, 너나 나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경주자가 아니겠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뜻을 이루도록 하여라.”

입회는 내 생의 가장 큰 은총
1981년 9월 8일 성심수녀회에 입회하였다. 이것은 지금도 내 삶의 가장 큰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어려움이 길에 깔려 있었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까지 수도 생활을 행복하게 한 것 같다. “한 영혼을 위해서라도 이 세상 끝까지 가기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셨던 창립자 마들렌 소피이의 정신이 배어 있어서인지, 주보인 예수 마음을 배우며 살려고 노력해서인지, 선배 수녀님들은 철저한 것 같으면서도 나를 통 크게 믿어 주고 인격적으로 대해 주는 부분이 있었다. 수도 생활 초심자였을 때, 나는 젊음의 치기와 이상으로 선배 수녀님들을 비판하였고 건방진 얘기들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선배 수녀님들은 꽤 너그럽게 받아 주고 기다려 주셨다. 단체로서, 개인으로서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복음대로 살려고 하며 세상의 변혁을 위해 열성적으로 투신하는 모습을 그분들에게서 본다.
수도 생활 역시 일생을 통해 한 인간으로서 통합의 길을 간다는 점에서, 일반 사람들이 겪는 인생 역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성장 과정을 거친다. 수녀회에 들어와서 몇 달 동안은 그야말로 하늘을 붕붕 떠다니는 것처럼 기뻤다. 수도 생활에서 신혼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청정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는 것 같아 ‘내가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가련다.’ 하고 여러 번 고백하곤 했다. 수도 생활을 한다는 사실이 너무 기뻐, 변기에 손을 넣고 속까지 닦아도 냄새가 하나도 안 났다. 또 주님을 위해 이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뿌듯했고 주님 생각에 애틋한 감정이 자주 벅차올랐다.

삶의 재료가 된 수도 생활의 갈등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차츰 수녀원의 삶이 어렵게 느껴졌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생각과 나의 고집스러운 부분 때문에 수련장 수녀님은 물론 동료 수녀들과도 자주 부딪쳤다. 또 성격과 성장 배경이 각기 다르다 보니 인간관계상 힘든 부분도 있었다. 같이 사는 수녀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괜히 눈에 걸리고, 부정적인 것을 꼬집어 내는 상대방의 태도가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부모의 보호 아래 좁은 세상에서 편하게만 살아온 나는 인간의 부조리와 삶의 그늘진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적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더하기보다 “수녀원에 온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사랑이 부족한가?” 하며 곧잘 주위의 수녀님들을 비판하였다. 그런 갈등을 겉으로는 숨기며 살았는데 어느 날 몸에 종기가 몇 군데 나더니 점점 커져서 움직일 때마다 몹시 괴로웠다. 결국은 병원에 가서 종기를 째고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가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나는 커다란 체험을 하게 되었다. 내 안에서 째내야 할 부분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부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나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에 찬 자세라는 것이었다. 이 일은 내가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크고 작은 갈등은 지난 26년간 계속된 내 삶의 재료였다. 그런데 신비한 것은 나와 다른 이의 허물과 한계를 알면 알수록 이런 나를, 이런 우리를 받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가 얼마나 크신지 더 절실하게 깨달아 간다는 것이다. 삶이 버거워 수도 생활에 회의를 느꼈을 때, 나는 마음의 보따리를 여러 번 쌌다. 그런데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겉껍질을 벗고 참된 나로 성장하는 기쁨을 깨닫게 해주셨다. 그 맛에 다시 보따리를 풀곤 하였다.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을 통해 주님은 나를 용광로의 불로 단련시키며 당신만이 나의 구원자임을 더 깊이 고백하도록 이끌어 주셨다. 나와 이웃의 죄와 약함이 얼마나 집요한지 보게 되지만 이런 나를, 이런 우리를 품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는 또 얼마나 헤아릴 길 없는지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인간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신비’
성심여고에서 영어 교사로 신명나게 15년여를 가르치고 난 어느 날, 총원장 수녀님으로부터 관구장으로 봉사하지 않겠느냐는 초대를 받았다. 그때 나는 한국 나이로 마흔다섯이었다. 처음엔 내가 관구장을 하기에 너무 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거절할 이유를 찾다가, 마흔다섯이라는 나이는 어머니가 일곱 번째 아이를 출산한 나이였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게 나이만 생각하다 보니, 지금이 다른 수녀님들을 돌보아 드리는 일을 해야 하는 나이인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총원장 수녀님이 그런 제안을 하신 것도 나 개인의 장점만 본 것이 아니라, 한국 성심 수녀회 수녀님들의 성숙함과 준비된 여건을 믿으셨기 때문일 거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나의 장점뿐 아니라 단점을 통해서도 일하신다는 마음으로 수락하게 되었다. 다시금 하느님은 나의 영웅심을 살짝 꼬드기며 일하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로 관구장 소임을 시작한 지 6년째가 된다. 이 기간 동안 수녀님들에게 도움이 되는 봉사를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는 하느님으로부터 개인적인 은총을 참 많이 받았다. 그 중에서 나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것을 가장 큰 은총이라고 생각한다. 또 수녀님들과 만나는 이들을 통해, 인간은 한 사람 한 사람이 참으로 오묘하고 섬세하게 창조된 걸작인데, 자칫 부서지기 쉬우므로 귀하게 다루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배웠다. 이 소임을 통해 인간의 고통과 아픔, 희망과 이상을 더 깊이 알게 되었는데, 인간 문제는 사실 문제가 아니라 ‘신비’임을 자주 고백하게 된다.

이젠 중년의 사랑법으로
요즘은 피정을 해도 옛날처럼 애틋한 신혼 감정으로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중년을 보내는 내 또래 친구들이 남편과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사랑을 표현하듯이, 나도 수도회의 책임자로서 수녀님들을 돌보는 역할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이것이 중년의 사랑법 같은데 주님께서 과연 나의 이 애정 표현을 좋아하실지 모르겠다. 그래서 자주 여쭙곤 한다. 친구들이 결혼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다 완숙한 인간으로 성숙해 가듯, 나는 수도 공동체 안에서 기도 생활과 공동체, 사도직 생활을 하며 온전한 인간으로 통합되어 가는 여정을 걷고 있다. 어느 날,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는데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말이다. 꼭 절벽에 심어진 소나무 같다는 느낌이 든다. 비가 오면 꼼짝없이 비를 맞아야 하고 눈이 오면 꼼짝없이 눈을 맞아야 하지만, 해가 나면 그 대신 반갑게 해를 다 맞을 수 있단다.” 인생의 온갖 풍상을 무던히 견뎌 낸 어머니 같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씀이리라. 어머니의 이 말씀은 수도자로서의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나는 비가 오면 수도자라는 우비로 몸을 가리고, 눈이 오거나 우박이 내리면 수도회라는 우산 아래로 숨어들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해가 나도 그 햇살을 온몸으로 받지 못하고 그 따사로움과 고마움마저 양산을 받친 채 시큰둥하게 느끼는 것은 아닐런지…. 그런 생각을 하면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 비유를 거울삼아, 종종 내가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무뎌져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비추어 본다. 앞으로의 여정이 어떨지 모르지만, 구름 기둥 안에 주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에 그냥 보이지 않는 구름 기둥을 껴안으며 불투명한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려 한다.

신앙 안에서 자기 미래를 결정하려는 젊은 분들께,

                                                                                   김효성 젬마 수녀

성탄이 다가오고 있다. 아기 예수님은 2,000여 년 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우리는 매해 이 날을 기념하면서 우리 자신도 새로 태어나기를 함께 염원하고 있다. 물론 성탄이 아니더라도, 나는 내면에서 늘 새로운 아기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고 있다.

오늘 나는 나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지니고 있는 젊은 분들, 특히 자기 인생의 미래 방향을 신앙 안에서 결정지으려는 젊은 여성들을 향하여, 이 글에서 나의 신앙과 수도성소 여정을 소박하게 나누고 싶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나의 이야기에서 자신의 신앙생활의 일부가 건드려지고, 내면에 새로운 아기가 탄생하는데 도움이 된다면, 내게는 크게 기쁨이 될 것이다.

나는 한국 나이로 26세인 1980년 봄에 성심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983년도 여름에 원효로 성당에서 첫서원, 그리고 1992년 초에 로마에서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러니 종신서원을 한지도 곧 22년이 되어간다. 교육을 사명으로 하는 성심수녀회 안에서 그 동안 내게 맡겨진 일은, 초기에는 여고생들, 여대생들과 더불어 지내는 것이었고, 이후에는 성인들(평신도 지도자들), 그 다음으로는 남녀수도자들, 최근에는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신 4,50대 이상의 여성수도자들을 교육의 장에서 만나는 일이다. 수도회 안에서 내 나이의 변화와 더불어, 내게 맡겨진 사람들의 나이도 차차 달라진 것은, 삶에서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다.

나의 부모님은 조부모님들과 더불어 오랜 세월 만주 연길에서 살아오셨다. 그곳 지역은 한국에 처음으로 들어온 베네딕도 수도회가 선교를 맡고 있는 연길교구였는데, 부모님들께서는 베네딕도 수도회 독일인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에게서 가톨릭 신앙을 배워 익혀오셨고 어릴 적 교육도 받으셨다. 해방 이후 부모님들께서 남한으로 내려오셨고, 한국 전쟁이 끝난 2년 뒤 서울에서 태어난 나는 아흐레 만에 서울 신당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이후 어린 시절의 내 모든 기억들은 거의 성당 마당과 더불어 떠오른다. 미사 때 제대를 향하여 돌아서시어 주로 뒷모습만 보이시던 신부님, 이따금 돌아서시어 팔을 벌리시고 큰소리로 무어라고 외치시면, 신자들도 응답하던 그 알 수 없던 말들(라틴어), 깃이 큰 모자를 쓰신 수녀님께서 긴 수도복을 치렁거리며 제대 위를 왔다 갔다 하시던 모습, 성체 강복 때의 신비한 분향 냄새와 모두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면 들리던 (긴장되면서도 신기하던) 종소리, 성당 어린이 놀이터 마당 주변에 피어있던 예쁜 방울 꽃, 작은 그네와 미끄럼, 유리창 밖에서 들여다 본 유치원의 각종 장난감과 인형들, 해마다 이 맘 때면 수녀님이 준비해놓으시던 아기예수님 구유… 미사가 끝나면 그 앞에서 조배 드리자고 가까이 나를 꼭 데려가시던 엄마.

사실 돌아보면, 나의 유년기에는 그냥 뜻도 모르면서 일상범주 안에 기도, 미사, 성당 다니는 것이 생활화되었던 것 같다. 아침, 저녁으로 가족들이 모여 방벽에 달아놓은 십자고상 앞에서 조과, 만과(아침기도, 저녁기도)를 바쳤는데, 내 귀에는 ‘조가, 망가’라고 들렸고, 커서야 그 말의 뜻을 알게 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도 숙제를 하던 채로 잠이 들면, 엄마는 나를 다시 자리에 눕히시기 전에, “효성아, 자기 전에 기도해야지?!”하고 잠깐이라도 나를 흔들어 깨우셨다. 내가 영 졸려 하면, “영광송만… 성부와만… 우리 효성이 착하지?!”하셨던 엄마 모습이 이즈음도 종종 떠오른다. 수녀가 된 지금에도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날의 끝 대화를 꼭 주님과 나누는 것이, 어쩌면 (수녀원의 교육과정에서도 배웠지만) 그때 들였던 습관에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자라던 내가 신앙에 대하여 크게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은 실상은 고둥학교 시절이었다. 머리가 크면서부터, 언제인지 나는 이전에 주일학교에서부터 듣고 배운 모든 교리들에 의문을 갖게 되었다. 예수님의 기적 행적 이야기나, 본당 신부님의 해설 등에 만족감이 없었고, 내 머리에서 파악하는 이치에는 그 모든 것이 도무지 맞아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고 2 때, 한번은 주일 미사에 가던 길에서 계속 질문이 떠올라, 그 길로 그냥 되돌아 오려 했던 적도 있었다. 즉, 신의 존재를 나 자신이 어찌어찌 머리로 따져 보았자 도무지 헛일이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가톨릭 학생회 활동을 즐기면서도, 내 근원적인 내면의 질문에는 어떤 만족한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성서모임에 참가하게 되었다. 창세기 공부를 처음 하면서, 그룹에서 공부하고 매주 말씀에 대한 생활 묵상을 나누고, 방학이면 성서 연수를 받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내 머리에서도 주님 말씀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왠지 만족감도 일어나면서, 생활 안에서 말씀을 받아들이는 안목도 그 당시에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 그래서 계속 이어 출애굽기 공부도 하고, 또 나도 말씀의 봉사자로 작은 그룹을 맡아 책임감을 느끼며, 더 공부하고 묵상 나눔을 하게 되었다. 나는 점점 더 흥미를 느껴 신약성서 공부도 하면서,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알기 시작하였는데, 그때는 벌써 대학교 4학년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내 삶의 방향을 정하여, 어떤 선택의 길에 들어서야 했다. 외적으로는 직장에도 다녔고, 친구들과도 만나고 어울려 다녔지만(그룹 친구나 개인 친구), 지금 돌아보면, 당시 나의 내면 세계에서는 끊임없이 ‘삶의 의미’를 질문하며 찾고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삶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것일까?” 나는 결국 ‘나라는 존재는 우주 발생 이래로 유일하게 단 한번의 존재로 태어났다가 가는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랐고, 또한 시편 139편 “주님, 당신은 저를 낱낱이 알고 계십니다”(1절)는 말씀이 나를 한사코 떠나지 않았었다. “앞에서도 뒤에서도 저를 에워싸시고… 당신 얼을 피해 어디로 가겠습니까?”(4절, 7절) 나는 주님께서 나보다도 더욱 나를 잘 알고 계시다(23절)는 마음에서, 주님께 내 자신을, 내 인생길을 전부 맡기기로 다짐하게 되었다. “저를 영원의 길로 이끄소서”(24절) (지금 돌아보면, 그 당시에 나는 혼자 내면에서 인생 방향을 선택하느라 식별의 기간을 거의 2년 정도 거친 것 같다. 가장 마음이 기울어지는 방향으로 내가 가닥을 잡았다고 여겨진다.)

그 당시 나는 직장으로 외국어교육 기관에 2년간 근무 중이었는데, 일단 (삶의 방향에 대하여) 마음을 먹으니 편안했고, 그래서 내가 알던 성심회 수녀님 한 분을 만나서, 그분께 나의 마음을 전부 말씀 드렸다. 수녀님은 지그시 웃으시면서 내 말을 깊이 들어주시더니, “오랜 동안 길을 찾느라 수고했어요.” 하시고는 당신도 오랜 동안 눈 여겨 보셨는지 나를 곧 수녀회 성소담당자에게 소개시켜주셨다. 그 이후로 나는 몇몇 가지 절차에 따라서, 수녀원에 와서 기도도 드리고, 책임자도 만나고, 여러 서류에 응답도 하였다. 그런 뒤, 나는 성심회에서 입회를 하도록 허락을 받았고, 내가 살던 삶의 모든 방식을 제쳐두고 마음이 즉시 성심회로 줄달음쳤다. 이 세상 모든 것을 그대로 놓고, 주님을 따르는 길에 금새라도 들어설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보면, 어디에서 그런 결단의 용기가 솟구쳐 올라왔는지 모른다. 누군가는 한 젊은이가 이런 길에 들어설 때의 용기를 마치 ‘달나라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들어가는 에너지만큼이나 큰 힘’이라고 표현한 것을 읽은 일이 있다. 어쩌면 예수님을 따르려고 그물도, 부모도, 모든 것을 버렸던 제자들의 내면에서도 이런 역동이 작용했던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들이 성경에서 읽듯이, 여러 가지로 부족한 제자들이기는 했지만…

성심회 입회 이후의 삶이 내게 결코 쉬웠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수련 초기에 나는 무지 행복했다. 서로 돌아가며 밥하고, 큰집 청소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 쉽지는 않았어도, 매일 기도하고, 성가 부르고 하는 등등이 내게 기쁨을 주었다, 적어도 6개월간은… 그러나 24시간 함께 사는 수련기 공동생활에서는, 가장 먼저는 나 자신을 정직하게 대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고, 또한 이처럼 다른 자매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여야 하는 어려움도 함께 있었다. 더구나 종종 식탁에서 듣는 사회 사건들과 인간 현실들에 관한 이야기가, 때로는 입회 전에는 내가 듣도 보도 못한 내용들이 있었는데, 참으로 황당해지기도 했다. (비교적으로 가정에서 큰 어려움을 모른 채 자라왔던) 내가 하필이면 입회하던 해, 광주 사태가 일어났고, 그 이후로 우리 사회의 각종 사회적 이슈들은 나를 많이 혼란에 빠지게 했다.

특히 나는 첫서원을 하고 나서도, 이런 사회적, 정치적 문제들을 신앙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있어서 많은 혼란들을 겪었다. “하느님이 과연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모순들이 있을 수 있을까?” 지금도 기억하는 KAL기 폭파 사건, 버마 아웅산 사건 등… 수많은 인명이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죽음을 당하는 사건들이었다. 그밖에 내가 더 가까이 알게 된 여러 가지 교회 내부 문제들로, 나는 많이 힘들어했고, 나에게 이해가 갈만한 아무런 틈이 없어지자, 나는 바닥치기를 해야 했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에 제기했었던 ‘신의 존재 문제’를 또 다른 상황과 맥락 안에서 자신에게 던져야 했고, 그러다가 차차 내면의 싸움에 지쳐, 나는 “안 계시는 하느님과 내가 어찌 싸우랴?”에까지도 이르게 되었다. 결국 ‘안 계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부재’를 오랜 동안 묵묵히 견디어 내야만 했는데, 돌아보면 그 모든 동안에도 성심회 선배수녀님들은 큰 관대하심으로 나의 여정을 지켜보며 함께해 주셨다. 이분들의 큰 사랑이 아니었다면, 신앙 안에서 이분들의 기다림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수도성소의 여정에서 아마도 중도하차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몇 년이 고통스럽게 지나던 어느 날, 나는 십자가의 예수님 위에서, 침묵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그냥 단숨에 터득하게 되었다. 말도 없어지고, 이론도 없어졌다. 모든 질문도 사라졌다. 그냥 사랑이다! 극도의 고통이 있는 그 자리에, 극도의 사랑이 그냥 있다는 사실 뿐이다. (알고 보니, 이것은 바로 수녀회 회헌에서 ‘성심수녀회의 목적과 사명’ 첫 단락 내용과 같다. “하느님께서는 죄로 상처받은 이 세상에 당신의 자비와 신의가 빛나게 하셨다.”) 나는 이런 체험 이후에, 내면의 안정이 생겨났고, 어느덧 수녀회의 종신서원 신청과 허락의 절차를 거쳐, 성심회 내에서 종신서원을 하였다. 그 이후로 내 삶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나는 이 세상의 여러 가지 죄스런 현실에 대하여, 지난 날들처럼 그토록 철저히 무지하지는 않다. 적어도 세상의 죄스러움이 곧 내 안의 죄스러움과 같다는 것, 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랑할 수 있다는 것, 사랑이 그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요, 생명력이라는 것을 나는 믿고 확신하고 있다. 나는 성심회 창립자인 성녀 소피 바라 수녀님의 교육적 확신과 미대륙 첫 선교사인 성녀 필피핀 뒤셴 수녀님에게서 많은 용기를 얻어낸다. 이분들은 세상의 현실, 고통, 분열을 철저히 겪어내셨으며, 이것을 이기는 방법이 그리스도의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하신 분들이다. 그래서 한 사람을 사랑으로 교육해내는 일을 지상 최고의 가치로 살아가셨다. 나는 이런 선배 수녀님들의 삶이 더 이상 꿈같은 이상이 아니라 철저한 현실이었다는 것을 알고, 그래서 더욱 생생한 존경심을 지닌다. 이는 오늘 내게도 적용 가능한 삶의 방식으로서, 내 신앙과 수도성소 여정의 핵심을 이룬다.

인생의 길을 찾는 젊은이들에게 감히, 나는 신앙 안에서 격려를 보낸다. 오늘 그대의 삶이 어렵고 힘들게 여겨질지라도, 사회가 캄캄하여 그대를 혼란케 할지라도, 만일 그대가 끊임없이 신앙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 든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그 의미가 그대의 손에 잡히게 될 것이니, 부디 지치지 말기를! 주님께서는 그대보다 그대 자신을 더욱 잘 알고 계시며, 생생한 사랑의 힘이시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도 작은 아기로 우리 가운데 태어나신다. 축 성탄

(작성 : 2014년 12월 18일)

남궁영미 다니엘라 수녀

아이들은 내가 만난 하느님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로 하여금 웃게 하고, 무언가 내 안에 있는 가능성을 끌어내어 발휘하게 하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도 편안할 수 있게 하는 아이들을 통해 나는 하느님을 만나게 되었다.

늘 내 존재 깊은 곳에는 어쩔 수 없는 존재론적인 두려움이 있었다. 아들을 기다리던 집에 기대하지 않은 딸로 태어났다는 것이 거절의 상처로 남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알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게 했다. 그래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며 만나게 된 아이들을 통한 이 ‘받아들여짐’의 체험은 하느님의 사랑으로 느껴졌다. 나의 능력이나 조건에 의해서가 아닌 이 무조건적인 하느님 사랑의 체험은 내 마음 깊이 각인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런 하느님을 따르는 삶을 생각하게 되었다.

내 성소의 동기는 뚜렷했다. 나로서 가장 기쁘고 나답게 살 수 있는 삶, 그것이 하느님께 봉헌하는 삶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수도 생활을 찾게 되었다. 특별히 여러 수도회 중에서 성심회에 입회하게 된 것은 하느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사람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에서 가장 크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또 모든 것을 공동체성에 두는 대공동체 보다 개인의 특성과 자율성에 대한 배려가 있는 소공동체인 성심회의 양성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입회의 과정을 회상해 볼 때 하느님의 介入을 깊이 느끼게 된다. 어머니의 병환으로 인한 망설임과 아버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작 입회의 과정은 순조롭고 단순했다. 입회 후 나는 이런 체험을 바탕으로 “질그릇처럼 깨지기 쉬운 내 안에 이 성소의 씨앗을 담아주신 하느님의 신비”에 더 깊이 의탁하며 살고 있다.

이진영 베로니카 수녀

안녕하세요?
저는 올 해 초 종신서원을 하고 귀국해서 지금은 성심여자중학교에서 국어교사 소임을 받아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수도자의 길을 택한 이유는 한 생을 기쁘고 의미있게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제겐 예수님이 꼭 필요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과 보여주신 행동, 그분이 사람들을 대하는 눈길과 태도,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저를 강하게 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분 말고도 저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 존재는 많았습니다.
여행, 영화와 책(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 아름다움과 인간적인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 살아온 방식, 그들의 생각들의 결정체), 영혼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의 만남(우정과 연인 관계), 참교육 운동에 투신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교사들이 주는 도전과 감동, 나도 그런 교사로 살고 싶은 소망…

그런데, 교사로서의 제 삶에서 가장 큰 위기가 닥쳐왔습니다.
새로 옮겨간 남자 고등학교에서 1학년 담임과 국어수업을 하면서 저는 국어교사로서, 담임으로서 바닥을 치는 경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격한 원칙 없이 그저 민주적이고 인간적인 분위기로 학급을 운영해 가고 싶은 이상만 앞섰던 저는 하루하루 학생들과의 힘겨루기에 지쳐갔고 국어수업에 대한 의욕과 흥미도 잃어갔습니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 무렵, 학교로부터의 탈출, 제 일상으로부터의 도피 수단의 하나로 그럴 듯하게 떠오른 것이 수도성소였습니다!!!

물론 주일학교 교사를 하던 때나 유아세례를 받고 가톨릭 집안에서 자란 어린 시절부터 주변에서 수도성소를 권하는 사람들이 많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넓은 세상을 깊이 체험하며 제 꿈을 이루고 자유롭게 치열하게 살고 싶었던 저는 수도자의 삶의 모습이 답답해 보였기 때문에 제 편에서 그런 제안에 거리를 두며 살아왔습니다.
사실 청소년시기부터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여행가나 기자, 혹은 외교관이었습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자유롭게! 치열하게!
삶의 진수를 맛보며 온 몸으로 살아있음을 느끼며 삶을 살고 싶은 열정이 샘솟았지요!

그러나 그런 이십대 때에도 제 마음 한 켠에는 성인들의 저술이나 영적인 내용의 책들에 대한 강한 끌림과 성경말씀에 대한 끌림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젊음이 주는 선물, 아름다움과 열정과 자유로움을 향해 브레이크 없이 전진만 하고 싶었던 제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에 진학을 한 것부터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4학년 때, 임용고시와 기자시험 준비 중 택일을 앞두고 잠시 고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교사도 적성에 맞았고 어머니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에 임고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그러나 첫 해에는 고배를 마시고 재수를 거쳐 교사로서의 삶을 시작했습니다.

남자 고등학교로 옮겨가기 전까지 4년여 동안은 교사로서의 안정된 삶과 여유있는 시간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여행과 독서, 영화와 친구들, 동료교사들과의 만남 등. 물론 그 사이 영적 독서와 피정으로 신앙적 목마름을 채워가는 여정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맞닥뜨린 교사로서의 한계 체험 앞에서 저는 신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내공이 약한 저를 처절하게 대면했습니다. 저를 지탱하고 있다고 여겼던 것들, 제게 삶의 자양분을 주고 힘을 주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함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제가 붙잡고 매달릴 것은 하느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기에 했던 피정이 바로 영신수련 8일 피정이었습니다.
그 피정 중, 저는 물과 피를 쏟으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발치에 서 있었습니다.
그분이 흘리시는 물과 피를 온 몸으로 맞으며 서 있던 제 안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왜 네 상처에만 집중하고 너를 찌르는 아이들이 가진 상처는 그 아픔은 보지 못하니?”
하는 소리였습니다.
그 순간, 제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어마어마한 크기와 무게의 바윗덩이가 깃털처럼 가볍게 날아가 버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돌무덤을 막았던 돌이 굴려지듯, 제 마음은 한없이 가볍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눈물과 함께 아이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의 마음이 샘솟았습니다.
집에서, 학교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받는 긴장과 스트레스로 꼬이고 뒤틀린 아이들의 상처받고 아픈 마음이 제 마음에 품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로부터 십일 년 뒤, 로마 빌라란테 수녀원에서 종신서원을 준비하는 30일 피정을 하던 중,
저는 그 오래고도 새로운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됩니다.

“진영아, 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니?”
“네가 본 것, 느낀 것이 옳다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니?”

그 말씀이 제 가슴을 파고 들면서,
깊은 회심의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 바로 그분뿐이시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 동안, 제가 뭐 그렇게 많이 변했겠습니까?
첫 서원 전, 다시 한 번의 고비를 겪고,
유기서원기 후반에 또 한 번의 위기를 겪으면서
많이도 흔들리고, 묻고 또 묻고 하며 살아왔습니다.
속 시원히 풀리지 않는 질문들을 안은 채,
종신서원이라는 비장한 관문 앞에서
감사하게도 저는 예수님 앞에서 정직하게 저를 열어보일 수 있었고
그런 제게 그분이 건네신 그 질문이 저를 내리쳤습니다, 죽비처럼.

수도자가 무엇하는 사람입니까?
저는 오롯이 그분만을 갈망하고 따르고자 하고 듣고자 보고자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분 때문에, 그분이 아니면 삶이 행복하고 기쁘지 않기에
다른 모든 것이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넘어뜨리고 헤집고 상채기를 주어도
그분 말씀과 그분 눈길, 그분 마음이 다시 새롭게 나를 일으켜 세우고, 위로하고 힘을 주기에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따르고 닮고 싶어서 그분과 함께 사는 사람이지요.
그분의 소망과 꿈을 내 것으로 삼아 함께 울고 웃으며 그 꿈을 이루어 가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처럼 이 세상에서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님을 중심으로 모여 사는 공동체의 일원.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존재와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제자들이 그러했듯이!
끊임없이 자신들의 중심을 근원을 의식하고 거기로 돌아가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사람입니다. 그 중심에 지식이나 지혜, 능력, 자유로움, 혹은 건강이나 안전, 인간 관계 등이 자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계시지요!
그러나 하루에도 얼마나 자주 그 중심을 잊어버리고 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기도가, 영적인 성찰이 없이는 수도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기도로써 하느님을 중심에 모시며 살고자 하는 사람,
제가 삶으로 알아들은 수도자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답입니다.
감사합니다!

성소모임 일정


ss 성심수녀회 성소모임

* 성소모임 안내 문의 : 이미순 마리아 수녀 010-4786-5501 

양성 단계 소개

성심수녀회 양성

“양성은 우리의 일생을 통해 내내 이루어진다. 양성이란 시작은 있으나 마침이 없는 하나의 과정이다. 성심수녀회의 양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임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성심회의 양성 – “성심수녀회의 운명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 6쪽)

초기양성이란 수도생활의 소망에 꼴을 갖추게 하고, 점차적 단계를 거쳐 성장하는데 도움을 주는 여정이다. 만일 어떤 문화에서 성소 하나가 생겨나 자라날 때에는, 각 문화의 특수한 맥락을 고려함과 동싱 기본적으로 유의해야 하는 몇 가지 공통 요소들이 있다. 즉 식별, 성령의 활동을 읽는 자세, 결정의 과정, 개인 및 공동체적 동반, 삶의 자리로서의 사도적 공동체, 교육적 사명과 가난한 이를 위한 우선적 선택, 성심회 영성, 성심회의 국제적 차원등이다.

성심수녀회 양성단계는 지원기(입회전 식별단계), 청원기, 수련기, 유기서원기, 종신서원수련, 계속수련의 여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단계의 양성은 수도생활의 기본적인 요소들에 대한 공부와 실천적인 체험, 그리고 신앙에 비추어 경험에 대해 성찰을 하는 것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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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
성소모임의 참여와 정기적인 개인 면담을 통하여 성심수녀회를 알아가는 시기

이 시기는 하느님의 체험의 깊이를 더해 가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숙과 자신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면 자신의 성소를 식별하는 시기이다. 성소식별은 성소모임의 참여와 성소담당 수녀와의 개인면담(최소 6개월이상)으로 이루어지며, 입회를 준비한다.

청원기 (1년 ~ 2년)

청원기와 성심수녀회가 서로 알아 가는 시기이다.

이 시기는 성심수녀회에서 수련받기를 원하는 사람의 성소를 좀더 잘 식별할 수 있게 하는 시기이다. 청원기를 시작할 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관계와 성심수녀회가 택한 사도적 수도 생활의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원의이다.

수련기 (2년 ~ 2년 6개월)

수련기는 이미 받은 성소를 신앙 안에서 내면화하고 첫 서원을 준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성심회는 수련자를 받을 때, 그의 재능과 한계점을 받아 들이며, 자기의 성소에 자유롭고 책임감 있게 응답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수련자들은 자매들과 소박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고 서로 도움과 도전을 주고 받으며, 용서하고 용서 받는 것을 배운다.
근본적으로 기도와 내적 생활에 바탕을 둔 성심수녀회의 정신을 체득하기 위하여, 수련자들은 기도에 뿌리 내리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다.
생활과 사건에 대한 매일의 영찰은 하느님의 현존과 활동의 표징을 발견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수련자들은 기도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행동을 통하여 예수 성심과 일치하는 것을 배운다.

유기서원기 (6년 ~ 9년)

유기 서원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생활 및 성심 수녀회의 사명에 대한 이해를 보다 심화시키는 단계로 들어가며 종신서원을 준비한다.

이 단계에서 유기서원자들은 새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곧 세상에 개방된 사도적 생활에 따르는 상황이다.
그가 발견하는 문제와 필요를 통하여 또는 대인관계나 친구 관계를 통해서 오는 다양하고도 수많은 요청들 안에서 하느님께 봉헌된 수도자라는 관점에서 적절한 선택 하기를 배운다.
또한 공동생활과 사도직 혹은 공부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과 진지한 접촉을 함으로써 유기서원자는 자신의 수도 생활을 심화시킨다.
온전히 하느님께 속한 자로서 기쁨을 누리며, 남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삶과 선택에 있어 소박하고 진실되며, 가난한 사람들과 불우한 이들을 향하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자신의 헌신을 더욱 강하게 다짐한다.

종신서원 수련기 (1년)

국제 수도회인 성심수녀회는 종신서원 수련을 국제수련으로 받는다. 이는 창립자인 성녀 소피로부터 강조된 ‘예수 성심 안에서 한 마음 한 뜻’ 정신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지의 반영이다.
동시에 국제 수녀회의 정체성을 깊이 뿌리내리고, 시선을 더 넓은 세계로 두어 함께 짊어진 ‘공동 사명’을 힘 있고 활기 있게 살 수 있는 단단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다.
종신서원의 허락을 받게 되면 유기서원자는 모든 사도직을 일시 중지하고 6개월 또는 일년간 다른 나라에 가서 서로 다른 문화에서 성심수녀회의 정신을 살고 있는 자매들을 만난다.
이때 유기서원자는 다른 나라의 사도직과 공동체 체험을 통해 국제적 감각을 넓히게 된다.
현재 세계 성심수녀회는 국제수련에서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을 의사소통의 도구로 삼고 있으므로, 한국 유기 서원자는 국제 체험 기간 동안 언어 연수도 겸하게 된다.
로마 성심수녀회 모원에 모인 각 국의 유기 서원자들은 30일 피정을 포함하여 약 5개월 가량 함께 종신서원 수련을 받은 후 총 원장 수녀 앞에서 종신서원을 발하게 된다.

계속수련

이 양성이 우리어지는 첫 장소는 매일의 공동체 생활이다. 공동체 기도와 전례, 영적 독서, 영적 동반, 공부, 여가활동을 통하여 회원들은 서로의 성장을 돕는다.

서약과 상호 신뢰로 일치되어 있는 종신서원 수녀들은 성심 수녀회에 온전히 자신을 바치며, 그들의 일과 삶 전체를 통하여 예수 성심의 영광을 드러내는 소명을 수행해 나간다.

성심자매회

성심자매회란?

“성심 자매회”란 성심수녀회의 영성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며 살 것을 지향하는 평신도들의 모임 단체이다.

매월 첫째 주일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오후 4시에 끝나는 정기 월모임에 참석하며 일정의 수련이 끝나면 성심 수녀회의 은사를 실천하며 살 것을 서원하게 된다.

성심자매회원이 되면?

“성심 자매회” 회원들은 한달에 한번 성심 수녀회 회원으로부터 영적 지도를 받게 되며, 개인 사정에 따라 성심수녀회 회원들의 연례피정(8박9일)에 함께 할 수 있다.

성심자매회 자격조건은?

“성심 자매회”는 영세를 받은 가톨릭 신자로써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과 성심 수녀회의 영성을 살고자하는 분들이 함께 할 수 있다.

성심 자매회 지도 : 오순자 마리아 수녀님 (핸드폰 010-5070-5114)